장애는 장애물이 아니다
대전의 한 60대 중증장애인이 1년 만에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에 진학해 화가가 되고 싶다”라는 다부진 인생 계획을 설계해 귀감이 되고 있다.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생명을 건지고, 뇌병변 장애(2급) 판정을 받은 송직호(62·대전 동구 가양동)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식자재 대리점을 운영하던 50대 초반 IMF 경제위기로 사업을 접고,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술·담배에 의지해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 결국 뇌병변으로 수족 마비의 후천적 장애인이 된 그는 ‘중풍은 불치병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다’라는 절망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고, 가출도 하면서 방황했다.
하지만 ‘이대로 인생을 포기하면 처자식을 누가 돌보겠느냐’라는 독한 마음으로 삶에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나를 이기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 ‘이왕 죽으려고 한 바에야 살아야겠다’라는 신념으로 죽기 살기로 운동도 하고, 평소 해보고 싶던 그림도 그리고, 컴퓨터도 배웠다.
그림 재미에 빠진 송 씨는 장애인지원기관인 사단법인 ‘꿈키움’ 주최 공모전, 전국장애인미술연합회 공모전 등에서 입상했고, 대전고용지원센터에서 컴퓨터를 익혀 파워포인트·엑셀 자격증도 취득했다.
낮에는 운동 삼아 가양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던 중 그는 도서관 인근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에 내걸린 검정고시 합격생 명단과 ‘단기간에 당신의 꿈을 이뤄드립니다’(수강료·교재 무료)라는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것을 평생 한으로 품고 살아온 송 씨는 ‘육십이 넘은 나이에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지난해 7월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의 문을 두드려 유성본부(구암평생학습원)에서 검정고시 도전에 나섰다.
남다른 열정으로 공부에 매진한 그는 올 4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불과 4개월 후인 지난달 고졸 검정고시에서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송 씨는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인간의 의지라는 건 어떠한 환경에서도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라며 “펜이나 붓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쓰고, 컴퓨터 자판을 한 손으로 치면서 자격증을 땄다. 수족은 불편해도 두 눈이 멀쩡하고, 속도는 느리지만 걸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검정고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선생님들, 저를 도와주신 이웃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벅찬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분들께 보답하는 길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대학을 목표로 화가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인생은 한 폭의 그림이다.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는 화가의 의지에 달렸다. 명화가 아니더라도 그 그림 속에 한 인간의 생명이 있다면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송 씨의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데다 당뇨와 갑상선을 앓아 돈을 벌지 못한다. 아들은 군 복무 중이고, 맏이인 딸이 병원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돕고 있다.
최무전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 대표는 “본인도 부인도 몸이 불편해 일을 못하는데, 딸이 생계를 돕고 있다 보니 기초생활수급 해택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라며 “배움에 대한 열망과 그림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송 씨의 사례가 불구의 몸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출처 : 금강일보>
